[28권 3호] <조선시대 조보 연구>(차배근, 2022)에 대한 서평 : 필사조보 창·폐간 시기, 조보명칭과 출현건수 등을 중심으로
| 작성자 관리자 | 등록일 2024-09-12 13:44:32 | 조회수 483회 | 댓글수 0건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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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조선시대 조보 연구>(차배근, 2022)에 대한 서평
: 필사조보 창·폐간 시기, 조보명칭과 출현건수 등을
중심으로
김영주*
(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명예교수)
이 논문은 2022년 10월에 서울대 차배근 명예교수가 발간한 역작 <조선시대 조보연구 : 조선왕
조실록 사료를 바탕으로>(671쪽)에 대해 필사조보의 창·폐간 시기, 민간인쇄조보의 구체적 내
용, 조보명칭 및 출현건수, 참고 사료·문헌 등에 초점을 맞춰 의견을 개진해 보는데 있다. 연구
결과 아래와 같이 몇 가지 결론이 도출되었다. ①초기형태의 조보는 성종대의 ‘비목’에서 형성되
었고 중종대에 체계적인 발전을 이룩하였으며, 1907년 12월 1일 폐간된 것으로 보인다. ②8쪽
잔편인 민간인쇄조보는 밝혀진 발간날짜를 통해 일간의 가능성(‘세계 최초의 활판인쇄 상업일간
신문’)이 확실시된다. ③조보(朝報)가 범용적 명칭이었으나, 정조대∼고종대까지(130년) 조지
(朝紙)가 범용적인 명칭이 되었다. ④기별서리들이 직접 편집한 조보가 ‘서울배달조보’이며, 저
보는 경주인이 소속 고을로 보낸 ‘지방배달조보’를 지칭하는 것이었다. 실제적으로는 저보 용어
의 출현부터 앞의 조보 형태와 중국에서 발행된 중국저보 3가지를 모두 일컫는 통칭(通稱)이었
다. ⑤기별은 중종대·선조대에 ‘조보의 별칭’으로 주로 사용되었으나, 다른 시기에는 조보등록·
유통 과정의 실무종사자들을 지칭하는 합성어로 대부분 사용되었다. ⑥소보(小報)는 분발과 동
일매체다. 광해조∼현종대는 분발을 자주 사용하였으나, 중국의 소보(小報)가 중국에서 크게 유
행하자 조선사대부들이 분발 대신 소보를 대거 사용하였다. ⑦송시열이 <춘추>의 부정적 이미지
(‘단란조보’라는 악평)를 크게 제고하였고 <난여>(김재로·김종수 저술)의 출현으로 '난보'가 긍정
적 이미지로 착근되었다. ⑧<승정원일기>의 7건과 <경종실록> 1건이 ‘조선의 필사조보’를 지칭
하였다. 또한, 고종대 조보초록집 <경보>(연세대 도서관 소장)의 존재와 선조대(2건)·고종대(1
건) 사대부 문집에도 출현하여 선조대∼고종대까지 ‘조보의 별칭’으로 어렵게 자리 잡았다.
핵심어: 조보, 저지, 기별, 소보, 난보, 경보
* kimyj@kyungnam.ac.kr, 제1저자/교신저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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